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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해성 (10) 시국집회 앞장 ‘매맞는 목사’별명
작성자 : 최고관리자   DATE : 13-01-29 10:57

[역경의 열매] 김해성 (10) 시국집회 앞장 ‘매맞는 목사’별명

1986년 5월1일 노동자의 날에 노동자 선교를 위해 ‘산자교회’를 개척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눅 20:38)는 성경 말씀에서 나온 이름이다. 곧바로 노동상담소 ‘희망의 전화’를 개설해 노동조합 결성,임금 체불,산업재해 등 노동자들에 관한 모든 일을 지원했다. 언제나 새벽 기도를 마치면 번호판이 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파업 현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였고 그들을 돕는 도움의 손길은 거의 없었다. 나는 현장을 찾아가 파업을 중재하고 폭행 당한 이들은 병원에서 치료 받게 해줬다. 해고 당한 이들에게는 숙식을 제공했다. 연행이나 구속된 이들의 뒷바라지도 내 차지였다. 급기야는 경찰이 교회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교회 입구에 경찰을 배치하거나 망원렌즈 카메라로 드나드는 사람을 촬영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산자교회는 동네 사람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 대신 산자교회는 갈 곳 없는 해고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활동 무대가 돼갔다.

한동안 나는 ‘매 맞는 목사’로 통했다. 성남 지역에서 시위하면 빠지지 않고 앞장섰다. 6월 항쟁 때는 집회마다 앞장서서 마이크를 잡고 시위대를 이끌었다. 또 시국사건에 대한 기독교계의 항의 시위나 집회 때도 나는 단골 선동자였다. 전두환 정권 당시 민정당 중앙당사를 항의 방문했다가 목사 50여명과 함께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 앞장서서 항의하다가 폭행을 당해 고막이 터지고 뇌진탕을 일으켜 실신했다. 오래도록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당시 터진 고막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는데 3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귀에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동네 이비인후과의원에 찾아갔더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시 서울대병원에 찾아가니까 담당 의사가 고막이 완전히 재생되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후보가 성남에 유세를 왔다. 현장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정보과 형사가 찾아왔다. “제가 오늘은 목사님을 꼭 막아야 합니다. 목사님 막지 못하면 제 목이 날아갑니다.” 그는 상부의 지시 내용을 보여주며 하소연했다. 강제로 막으면 담이라도 넘어가겠지만 인간적으로 호소하는 데는 어쩔 수 없어 반강제 연금을 당했다. 연금에서 풀려나자 오토바이를 타고 유세 현장으로 갔다. 무개차 위에 서서 손을 흔들며 나오는 노태우 후보와 코앞에서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죽은 친구 유동운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광주 학살 책임 지고 노태우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호원들이 비호같이 덮쳐 죽도록 때렸다. 나는 닭장차로 끌려가 또다시 맞았고 턱뼈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당시 성남경찰서에서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취업을 방해했다. 주민교회와 산자교회 교인들은 연합해 성남경찰서 정문을 막은 채 기도회를 열었다. 경찰이 우리를 강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팔꿈치,나는 갈비뼈가 부러졌다. 같은 병실에서 두 달여 만에 퇴원한 그날 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열려 있는 맨홀에 오토바이 앞바퀴가 걸려 또 사고를 당했다. 겨우 붙었던 갈비뼈가 다시 부러졌다.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음독자살 분신자살 등이 이어져 어쩔 수 없이 나는 가슴에 복대를 하고 나가서 대책회의를 여는 등 지원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당시에는 반체제,반정부 인사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지만 지금은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이 되고 명예 회복까지 시켜주는 상황이 되었다. 격세지감이 들었다. 지나간 세월이니 그렇지 다시 하라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할 것 같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딱 맞는다.

정리=박동수 편집위원
d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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